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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길남 박사 가족을 구하기 위한 캠페인 - HRNK

11
Sep 2012

오길남 박사 가족을 구하기 위한 캠페인

 

 
오길남 박사와 그의 가족이야기
 

자료제공 : 조선일보

 

오길남 박사는 남한 독재시절 유신체제에 반대하며 독일에서 공부하기 위해 남한을 떠난 지식인이다.

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 3의 기관에 의해 독일에서 오길남 박사가 발견된 후 북한 공작원들은 그에게 접근하여 그가 하고 싶은 만큼 경제학을 공부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그를 유혹하였다. 북한 공작원들은 또한 당시 간염을 앓고 있던 오 박사의 부인을 치료해주겠다는 약속도 하였다. 1985년 오 박사는 북한에 가기로 결정하고 그의 부인과 두 딸 혜원, 규원이를 데리고 북한에 들어갔다.

 “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죠.” 오 박사는 그의 결정을 후회했다. 평양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그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. 그의 가족은 산악지역의 군 캠프로 옮겨져 김일성의 교시만을 반복적으로 공부할 것을 강요당했다. 그 후 그는 남한사람들을 공략하는 북한라디오선전방송인 “국가구원의 소리”라는 지위로 옮겨졌다.

다음 해 오 박사는 북한정권을 위해 독일로 가서 그 곳에서 공부하는 남한 학생들을 설득하라는 (북한 편으로 끌어들이라는) 지시를 받았다. 다만 북한당국이 그의 가족을 그와 함께 데리고 독일에 갈 수 없게 하는 바람에 그의 가족은 북한에 남겨지게 되었다. 그의 부인 신숙자 씨는 그에게 남한으로 탈출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잡으라고 그를 설득했다. 결국 오 박사는 1986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망명신청을 한 후 남한에 1992년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. 그 당시 그는 끊임없이 그의 가족을 그가 있던 곳으로 데려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.

오 박사의 말에 의하면 소위 애국작곡가인 윤일상 씨는 오 박사에게 “ 너는 너에게 은혜를 베푼 김일성 지도자를 배신했다. 또한 너는 (“국가구원의 소리”를 담당하고 있는) 칠보산 연락부서의 비밀을 알고 있다. 그러므로 우리는 너의 가족을 인질로 삼는 수 밖에 없다.”라고 말하면서 그를 압박했다.

작곡가 윤일상은 그의 부인으로부터의 편지를 오 박사에게 전해주면서 또 다시 그에게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했다. 거기엔 또한 그의 부인과 두 딸이 녹음한 오디오 테잎도 있었는데 그들의 목소리는 강요당하고 위협당한 것처럼 보였다.

그의 가족 신숙자, 혜원, 규원은 전하는 바에 따르면1987년 이후로 계속 악명높은 정치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다. 강철환, 안혁, 김태진, 그리고 현재 그 곳에 있는 요덕수용소의 다른 감금자들은 그 수용소에서 오 박사의 가족들을 봤다고 증언했다.

현재 남한 NGO단체들은 오 박사의 부인과 아이들을 북한 정치수용소에서 구해내기 위해 캠페인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. 이 캠페인의 목적은 남한,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으로 하여금 신숙자, 혜원, 규원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남한으로 돌아오는 데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. 

 

– ICNK

2011.10.07